[박근필 칼럼] 끝없는 선택, 무너져 가던 나 ― 데일리벳 포럼와 자기 의심


0
글자크기 설정
최대 작게
작게
보통
크게
최대 크게

원장으로 제 병원을 운영하던 시절, 하루는 온통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떤 검사를 진행할지, 어떤 약을 처방할지, 수술을 권할지 말지. 때로는 진료비 문제로 치료 범위를 조정해야 했고, 더 무겁게는 안락사 여부까지 제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매 순간 내린 크고 작은 결정들이 쌓이면, 하루가 끝날 때 머릿속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곤 했죠.

당시 저는 ‘훌륭한 수의사라면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내릴 데일리벳 포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늘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증상이라도 보호자의 상황에 따라 다른 길을 택해야 했고, 정답이 없는 문제를 안고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많았습니다. 결과가 기대만큼 좋지 않으면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라는 자책도 했습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자 병원 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오늘도 수십 번의 선택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이 버겁게 다가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소한 결정조차 힘들어졌습니다. 퇴근 후에는 작은 일에도 판단이 흐려졌죠.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데일리벳 포럼(decision fatigue)’라는 것을요. 뇌가 가진 에너지는 한정돼 있고, 반복되는 선택은 그 에너지를 빠르게 고갈시킨다는 개념입니다.

환자 앞에서는 늘 최선을 다하려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 안의 여유는 사라졌습니다. 보호자의 한마디에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스스로 내린 결정을 끝없이 되새기며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방법을 썼다면 더 나았을까?”, “내가 환자의 운명을 잘못 바꾼 건 아닐까?” 같은 질문을 자주 하며 살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결정을 완벽하게 내리려 했던 제 태도가 오히려 저를 더 빨리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수의사라면 늘 정답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이 저를 옥죄었던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답 없는 문제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기에 제 마음은 더욱 빠르게 소진됐습니다.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모든 결정을 옳게 내릴 수는 없다는 것, 때로는 결과보다 책임지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요. 데일리벳 포럼를 줄이는 길은 완벽한 답을 찾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돌아보면 그때 제게 부족했던 건 지식이 아니라 자기 연민과 여유였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동료 수의사분들께 꼭 전하고 싶습니다. 혹시 요즘 작은 결정 하나에도 머뭇거리고,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내린 판단을 끝없이 후회하고 있다면, 그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데일리벳 포럼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땐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고 잠시 멈추어 숨 고르기를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직업의 특수성이 만들어낸 무게일 뿐, 개인의 나약함 때문은 아닙니다.

여전히 하루에도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이제는 모든 판단이 ‘정답’일 필요는 없다는 걸 압니다. 그럴 수 없다데일리벳 포럼도 알고요. 때로는 동료에게 조언을 구하고 함께 고민하며, 무엇보다 제 자신을 조금 더 너그럽게 대하려 합니다. 완벽한 답을 찾기보다 책임질 수 있는 태도를 갖데일리벳 포럼, 그것이 결국 저와 여러분이 이 길을 오래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겁니다.

<회복탄력성과 기록에서 희망을 엿보는 3부로 이어집니다-편집자주>

[박근필 칼럼] 끝없는 선택, 무너져 가던 나 ― 데일리벳 포럼와 자기 의심

Loading...
파일 업로드 중 ...